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차라급 중순양함 (문단 편집) === [[레이더]]의 부재 === 취역 시점 레이더가 없었던 것은 당연한 상황이었는데 그럴 수밖에 없었던 것이 '''애초에 레이더라는 개념 자체가 막 등장할 시점에 만들어졌던 배라서...''' 문제는 이후 상황. 30년대 중반 최초의 이탈리아제 레이더 프로토타입 시연 이후 무솔리니의 지시로 레이더 개발 부서가 만들어졌고 이후 개량을 거듭해 프로토타입 레이더인 EC1, EC2 레이더를 거쳐 이후 리토리오급에도 장비되는 EC3 계통의 시제품이 이탈리아의 2차대전 참전 직전(39년 말)에 완성되었다. 시기적으로 봤을 때 미국이나 영국에 크게 뒤지지 않는 시기였으며 레이더 성능 또한 영국/미국에 비해 약간 뒤떨어지는 수준 정도였다.[* 실제 1943년, 레이더를 장착한 [[카피타니 로마니급 경순양함]] '''쉬피오 아프리카노'''는 야간에 영국 MTB '어뢰정' 4정을 포착해 일방적으로 공격해 1척을 격침시키고 2척을 중파시킨적이 있다. 야간에, 작은 어뢰정을 대상으로 했다는 점을 보면 이탈리아의 레이더 성능이 크게 나쁘다고 볼 수 없는 점이다.] 그런데 여기에서 이탈리아의 참전으로 인해 이탈리아 해군 측에서 중요도가 떨어진다고 판단되던 레이더 개량 및 양산의 우선도가 크게 후퇴하게 되었고 이로 인해 이탈리아 해군 함선들이 레이더를 장비하지 못한 채로 지중해 전역이 개전하게 되어버렸다. 차라급에도 장비되지 못한 것은 당연한 상황. 이로 인해 탑재한 수상기 및 견시원의 직접적인 관측만으로 적을 인지해야 했으며 직접적인 관측이 매우 제한되는 야간에는 더욱 취약한 모습을 보여줄 수밖에 없었다. 결국 마타판곶 해전의 대참사를 겪고 난 뒤[* 단, 일각에서 주장하는 것과 달리 마타판곶 해전에서의 근본적인 패배 원인은 항공 지원 미비 쪽에 힘이 쏠린다. 시칠리아 파견 [[루프트바페]]에서 지원되기로 했던 약 20기의 항공 지원이 어디론가 증발하면서(전투 당시 이탈리아 쪽에선 전혀 관측되지 않았으며 영국 측 기록에서도 전황에 전혀 영향을 끼치지 못한 [[Ju 88]] 2기만이 관측되었다.) HMS 포미더블의 항공 공세를 그대로 얻어맞아야 했기 때문.] [[사후약방문]] 식으로 함선들에 레이더를 장비하게 된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